유라시아 아는 만큼 보인다 EP.12 [옴스크]

옴스크는 러시아 서시베리아 최대 도시의 하나다. 러시아 내전 당시 반(反)볼셰비키파의 수도였으며 제국의 금 보유고도 이곳에 있었다. 당초 유배지로 출발했으며 죄수의 상당수가 옴스크에 정착했다.
인종 구성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형성됐는데 러시아인, 독일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을 포함한 많은 민족이 이곳으로 파견되거나 추방됐다.
1756년 목조 요새가 석조로 재건축됐고 1782년 시로 승격했다. 1892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로 국내는 물론 독일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외국과 연결되는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의 항공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시베리아 문화 중심지의 하나로 공공 도서관이 47곳, 박물관 9곳, 전문 극장 9곳, 오락시설 23곳과 주립서커스단, 콘서트홀 등이 있다. 옴스크 극장들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연간 500회 이상의 축제, 전시회, 콘서트 등의 문화 행사가 열린다.
#도스토엡스키의 유형지.. 옴스크
서양사에서 1940년대는 최고의 격동기였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수립된 반동적 빈체제는 유럽 전역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는데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46년 ‘가난한 사람들’로 러시아 문단에 큰 파란을 일으킨 신인 작가 도스토엡스키도 이 거대한 혁명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약 4개월간의 혹독한 심문 끝에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사형 대신 시베리아 유형에 처한다는 황제의 특명이 발표된다.
극적으로 사형을 면한 도스토엡스키는 시베리아 유형 4년 형을 선고받고 5kg의 최고랑을 발에 차고 지붕도 없는 썰매에 실려 엄동설한의 눈보라 속을 16일 동안 달려 옴스크에 도착한다.
도스토엡스키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지옥 그 자체였다고 하면서 자전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한다.
고생이라곤 모르고 산 귀족 장교이자 작가인 도스토엡스키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영하 40도에서의 중노동이 아니라, 귀족 인텔리와 민중 간의 벽인 그 깊은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이었다고 한다.
이런 도스토엡스키를 동정했던 한 소녀에 의해 인간에 대한 애정과 구원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면서 이 소녀는 훗날 ‘죄와 벌’에서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를 구원하는 창녀 소냐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덕분에 옴스크는 오늘날 최고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차가운 시베리아.. 따뜻한 도시 옴스크
옴스크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정유공장도 위대한 문학가도 예술가도 아닌 햇빛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옴스크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햇빛 쨍쨍한 날이 약 300일이나 되는 가장 따뜻한 도시라고 한다. 덕분에 녹지가 풍부해 ‘정원의 도시’라고도 불린다고..
2006년에 우리나라 진주시와 자매결연을 시작으로 경주대학교와는 학술교류 및 한식 페스티벌 개최, 대림산업과는 정유소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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